◈어느 마음에 점을 찍을까◈
훗날 방(棒)으로 유명해진 덕산 선감(782-856 당나라스님)은 항상《금강경》을 강의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당시 사람들은 그를 주금강(朱金剛)이라고 불렀지요.
어느 날 남방의 선원이 자못 성대하다는 소문을 듣고 선사는 이를 깨부수고자 금강경 주석서를
짊어지고 남방으로 향했습니다.
남방에 다 이르러 길에서 한 노파가 떡을 팔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떡을 사서 점심을 먹으려는데 노파가 말하기를,
“질문 하나가 있는데 대답을 해 주시면 점심을 시주로 대접하겠지만, 만일 답하지 못하면
딴 집으로 가시오. 《금강경》에 이르기를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어느 마음에 점심(點心),
즉 점을 찍으려 하시오?”
이에 선사는 답을 못했습니다.
선사는 일개 떡 파는 노파의 질문에 대답을 못해서 점심을 쫄쫄 굶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노파에게 창피를 당한 선사가 용담스님의 처소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밤늦게 입실하니 용담이 말하기를, “그냥 돌아가라”하였습니다. 이에 선사가 인사들이고
발을 거두고 나오려니, 밖이 어둡기에 돌아서서 말하였습니다.
“스님, 밖이 어둡습니다.” 그러자 용담이 지촉에 불을 붙여 건네주었습니다.
선사가 막 받아 나가려는데 용담이 바람을 일으켜 불을 끄니, 선사가 모르는 결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놀란 선사는 “내가 지금부터는 천하 노화상의 혀끝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이튿날 선사는 금강경 주석서를 가지고 법당 앞으로 가서 횃불 한 자루를 들고 말하였습니다.
“온갖 현묘한 말재주를 다 부리더라도 터럭 하나를 허공에 날린 것 같고,세상의 온갖 재간을
다 부리더라도 한 방울물을 바다에 던진 것 같다.”
그리고는 그 책을 태웠다고 합니다.
덕산에게 과거 깨달음이 있었던 것은 다만 자기 자신만을 깨달았을 뿐 눈앞의 일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옛사람이 이르기를 “열반의 마음을 깨닫기는 쉬우나 차별된
지혜는 밝히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자신만이 깨달았을 뿐, 눈앞의 일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삼세심불가득(三世心不可得)을 이치로만 이해할 뿐, 눈앞의 떡 조차 집어먹지 못한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으로 말하자면, 아마도 눈앞의 가까운 인연에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사실 가까운 인연일수록 소홀하기가 쉽습니다. 매일 보는 사람이니까 대충 소홀해도 다
이해하겠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만큼 더 소중히 대하는 것이 차별된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디론가 영원히 먼 길을 떠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오직 한 사람만 동행할 수 있다면,
그 길을 누구와 함께 떠날 것인가요?
이렇게 소중한 사람에게 나는 정말 소중한 만큼 잘 대해주고 있는가요?
그만큼 나의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요?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건 없는지요?
멀리 있는 인연에게 한눈 팔려 정작 가장 가까운 인연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지금 당신이 있는 이곳의 인연을 소중히 하십시오.
당신 가까이에서 따뜻한 체온으로 당신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이들을 말입니다.
그들이야말로 당신이 넘어져 울고 있을 때 손을 내밀어 줄 사람들이며, 당신의 심장이 차갑게
식어갈 때 온기를 넣어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월호스님의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당신을 사랑합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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