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믿는 신심이 중요합니다 ♣
귀의 삼보하옵고 참선 초보자 입니다.
즉심시불이라 해서 앉으면 내 마음을 관조하면서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얼른 그 망상을
없애고 본래 마음자리로 돌아가고 하는데 그럴 때 이뭣고라는 화두와 연결이 잘 안됩니다.
(화두도 내 마음대로 정한 것입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 것, 이것이
무엇인고 라고 화두를 잡으라 하는데 즉심시불은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이뭣고 라는 화두와 연결하지 말고 마음상태만 잘 살펴보면서 망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만 하고 있어도 되는건지 제가 제대로 알기나 알고 질문을 드리는건지 지도말씀
기다리겠습니다.
현웅 스님 답변
백담거사님께서 신상을 밝혀주시니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훌륭한 스님들도 친견하고 많은 신심을 일으키는데 공을 들였군요.
이러한 것들은 거사님의 생활의 패턴을 불교적으로 방향을 바꾼데는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널려져 있는
신심보다도 이제는 바로 믿는 신심이 중요합니다.
신심이란 말 자체는 애매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짝 졸여서 표현하면 사람 사람한테 있는
깨닫는 성품을 믿는 일입니다. 이 성품이 우리들이 바깥으로 치닫는 생각들 때문에 경험이
안되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신심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 처럼 널려지게 되었습니다.
불성을 믿는데 번뇌망상속에 살아온 사람이 이것을 믿으려고 하면 아득할 수 밖에 없지요.
발심된 사람한테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한테는 아득하게 다가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을 자세히 새겨들으면 번뇌망상이 불성하고 멀리 따로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믿어져야 됩니다.
불성은 눈에 안보이면서 번뇌망상을 통해서 나타내고 다른 작용을 통해서 보입니다.
형상이 없으면서 형상을 통해서 보이니 어차피 형상을 의지해서 형상아닌 것을 경험할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형상을 통한 작용 때문에 참선이 가능해 집니다. 그러나 불성이 무엇인가 규명이
되어져야 됩니다. 불성은 묘용중에 있으면서 잡을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알고 싶어도 알 수도 없고 그러다보니까 생각이 끊어진 결과가 되면서 알 수 없는
의심만 눈앞에 드러나니 생각이 끊어지고 마음길이 끊어졌으므로 홀로 뚜렷한 의정만
드러나니 이것을 의단독로라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 말은 하지만 벽담거사님께서 자신을 믿고 해야되는 것이기에 여기에 신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첫째 신심은 부정적으로 보기 쉬운 일체 생각이나 번뇌망상을 밀어내버리고 공부하려고 하지 말고
이것 자체가 불성하고 같이 있다고 관(觀)해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싱거운 방법같지만 쉽게 생각과 번뇌망상을 조복할 수가 있습니다.
대개 선가에서 큰 것만 얻으려고하지 큰것 주변에 잡것들을 뿌리치고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갈등만 커집니다.
그런 것이 신심인양 여겨져 왔는데 사람을 가르치면서 이 불성을 관해가는 법을 먼저 했더니
흩어진 신심도 정돈되고 일반 정서도 안정을 얻게 되어 화두를 해가는데 큰 기초가 됩니다.
문제는 철저하게 믿고 하느냐 안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것이 잘 안되는 이유는 우리는 불법을 너무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바로 믿기 위해서 아는 것인데 아는 것을 지키고 있는 한 공부가 시작이 안됩니다.
해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씁니다.
현웅 스님/ 육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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