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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편지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 수선 다섯 뿌리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 수선 다섯 뿌리 눈 속에 묻혀서 지내다가 엊그제 불일암을 다녀왔다. 남쪽에 갔더니 어느새 매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남지춘신南枝春信이라는 말이 있는데,매화는 봄에 햇볕을 많이 받는 남쪽 가지에서부터 꽃을 피운다고 해서 이런 말이 생긴 것 같다. 남쪽 가지에 봄소식이 깃들여 있다니 그럴듯한 표현이다. 기왕에 심어 놓은 매화인데 생육 상태가 안 좋아 재작년 가을에 자리를 옮기고 거름을 듬뿍 주었더니 활기를 되찾아 올해에는 꽃망울이 많이 맺혀 있었다. 나무뿐 아니라 사람도 있을 자리에 있지 않으면 자신이 지닌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어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시들고 만다. 이번에 불일암 내려가면서 수선 다섯 뿌리를 가지고 가 돌담 아래 심어 주었다. 이 일을 마치고 나니 숙제를..

무소유(법정) 2022.01.19

오두막 편지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 비닐 봉지 속의 꽃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 비닐 봉지 속의 꽃 11월 한 달을 히말라야에 가서 지내다 왔다. 해발 2천에서 2천 5백 고지에 있는 가난한 산동네이다. 8년 만에 다시 찾아간 네팔과 인도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지지 않은 그들의 생활이 도리어 믿음직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되어 가는 세상에서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했다. 우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생활수준으로 비교한다면, 그들은 너무도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근로자의 하루 노임이 우리 돈으로 남자는 2천 원도 안 된다. 여자는 그 절반이다. 그쪽에서 중산층 4인 가족의 한 달 생활비는 집세까지 포함해서 13∼4만 원 수준이다. 이런 생활조건 아래서 살아가면서도 그들의 눈..

무소유(법정) 2022.01.19

오두막 편지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 안으로 귀 기울이기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 안으로 귀 기울이기 옛글인 에 이런 표현이 있다. 시냇물 소리는 한밤중이요. 산빛은 해질녘이라 泉聲中夜後 山色夕陽時 시냇물 소리는 한밤중의 것이 그윽해서 들을 만하고, 산빛은 해질녘이 되어야 볼 만하다는 뜻이다. 낮 동안은 이일 저일에 파묻히느라고 건성으로 지내다가, 둘레가 고요한 한밤중이 되면 산중에서 들리는 거라고는 오로지 시냇물 소리뿐이다. 시냇물을 따라 어디론지 흘러가고, 지극히 편하고 그윽한 마음이 꽃향기처럼 배어 나온다. 해질녘 가라앉은 빛에 비낀 산색에는 생동감이 있다. 그 굴곡과 능선이며 겹겹이 싸인 산자락까지 낱낱이 드러나 꿈틀거리며 살아 있는 산은 바라볼 만하다. 마음을 열고 무심히 석양의 산색에 눈길을 보내고 있으면,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바쁘게 살아..

무소유(법정) 2022.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