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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편지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 가난한 절이 그립다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 가난한 절이 그립다 옛 스승은 말씀하셨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가난해야 한다. 가진 것이 많으면 반드시 그 뜻을 잃는다. 예전의 출가 수행자는 한 벌 가사와 한 벌 바리때 외에는 아무 것도 지니려고 하지 않았다. 사는 집에 집착하지 않고, 옷이나 음식에도 생각을 두지 않았다. 이와 같이 살았기 때문에 오로지 도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이런 법문을 대할 때마다 나는 몹시 부끄럽다.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생각 일으켜 살던 집에서 뛰쳐나와 입산 출가할 때는 빈손으로 온다. 이 세상에 처음 올 때 빈손으로 오듯이, 이 절 저 절로 옮겨 다니면서 이런 일 저런 일에 관계하다 보니 걸리는 것도 많고 지닌 것도 많게..

무소유(법정) 2022.01.19

오두막편지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 어느 오두막에서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 어느 오두막에서 올 봄에는 일이 있어 세 차례나 남쪽을 다녀왔다. 봄은 남쪽에서 꽃으로 피어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매화가 그 좋은 향기를 나누어주더니 산수유와 진달래와 유채꽃이 눈부시게 봄기운을 내뿜고, 뒤이어 살구꽃과 복사꽃, 벚꽃이 흐드러지게 봄을 잔치하고 있다. 메마른 가지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다니, 그 꽃에서 고운 빛깔이 생겨나고 은은한 향기가 들려오다니,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살아 있는 생명의 신비는 그대로가 우주의 조화다. 이 우주의 조화에는 가난도 부도 없다, 모든 것이 그 때를 알아, 있을 자리에 있을 뿐이다. 꽃은 무심히 피고 소리 없이 진다. 이웃을 시새우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꽃에 비하면 그 삶의 모..

무소유(법정) 2022.01.19

오두막 편지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 섬진 윗 마을의 매화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 섬진 윗마을의 매화 며칠 전 내린 비로, 봄비답지 않게 줄기차게 내린 비로겨우내 얼어붙었던 골짜기 얼음이 절반쯤 풀렸다. 다시 살아난 개울물 소리와 폭포소리로 밤으로는 잠을 설친다. 엊그제는 낮에 내리던 비가 밤 동안 눈으로 바뀌어 아침에 문을 열자 온 산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피어 볼 만했다. 말끔히 치워 두었던 난로에 다시 장작불을 지펴야 했다. 옛사람들이 건강 비결로, 속옷은 늦게 입고 늦게 벗으라고 한 그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날씨가 좀 춥다고 해서 곧바로 두터운 속옷을 껴입으면 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는 데에 저항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햇살이 좀 따뜻해졌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다. 앞을 다투어 봄소식을 전하는 방..

무소유(법정) 2022.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