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1]이러한 생활 속에 근심 걱정할 것 없으니 어부의 생활이 최고로다. 조그마한 쪽배를 끝없이 넓은 바다 위에 띄워
두고 인간 세사를 잊었거니 세월 가는 줄을 알랴.
[2]아래로 굽어보니 천 길이나 되는 깊고 푸른 물이며,
돌아보니 겹겹이 쌓인 푸른 산이로다. 열 길이나 되는 붉은 먼지는 얼마나 가려 있는고, 강호에 밝은 달이 비치니 더욱 무심하구나.
[3]푸른 연잎에다 밥을 싸고 푸른 버들가지에 잡은 물고기를 꿰어, 갈대꽃이 우거진 떨기에 배를 매어두니, 이런
일반적인 맑은 재미를 어느 사람이 알 것인가.
[4]산머리에는 한가로운 구름이 일고 물 위에는 갈매기가 날고 있네. 아무런 사심 없이 다정한 것으로는 이 두 가지
뿐이로다. 한평생의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고 너희들과
더불어 놀리라.
[5]멀리 서울을 돌아보니 경복궁이 천 리로구나. 고깃배에 누워 있은들 (나랏일을) 잊을 새가 있으랴. 두어라, 나의
걱정이 아닌들 세상을 건져낼 위인이 없겠느냐?
[감상]
「어부가」는 일찍이 고려 때부터 12장으로 된 장가와 10장으로 된 단가로 전해져 왔는데, 농암 이현보가 이를 개작하여 9장의 장가, 5장의 단가로 만들었다. 농암의 어부가는
한자어가 많고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은 결점을 지녔으며, 정경의 묘사도 관념적이라고 평가된다.
이 작품은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 영향을 주었다.
'어부'는 굴원(屈原)의 「어부사(漁夫辭)」 이래로 우리 문학 작품이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은자(隱者)의 상징이
되어 왔다. 그러니까 이 어부는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어부가 아니라 세속과 정치 현실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며 사는 가어옹(假漁翁)일 뿐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실제 어부로서 생활을 하면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어부의 상을 빌려 세속에서 벗어나 한가하고 느긋한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을 노래한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굴원(屈原)의 어부사(漁夫辭)]
굴원이 죄 없이 쫓겨나 상강의 물가를 거닐며 시를 읊조리고 있었다. 시름 때문에 안색은 파리했으며, 몸은 마른
나무처럼 수척했다.
한 어부가 다가와 굴원에게 말했다.
"그대는 초 나라의 삼려대부가 아니신가? 어찌하여 이 곳에 오게 되었소."
굴원이 대답했다.
"세상이 온통 이욕(利慾)에 눈이 어두워 흐려 있지만 나
혼자 맑습니다. 뭇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 혼자 깨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렇게 쫓겨나게 되었다오."
어부가 말하였다.
"성인은 세상의 권세 등과 같은 외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시세에 따라
자유로이 옮아갑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흐려 있거든 결백한 지조 따위는 안으로 감추고,어째서 그들을 따라 함께 출렁이지 못합니까. 뭇 사람 모두가 이욕에마음 취해 있거든 취하지 않았어도 취한 척, 어째서 지게미 씹고 밑술 들이마시지 못합니까? 깊은 생각과 높은 지조 어이 내세워 그
몸을 이 지경으로 만든단 말입니까?"
굴원이 말했다.
"나는 들었소.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갓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사람은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어찌 이토록 깨끗한 몸에다 그 더럽고 욕된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이요. 차라리 상수에 몸을 던져 고기의 뱃속에다 장사지낼지언정 희고 맑은 이내 몸이 어찌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소."
어부는 빙그레 웃고 뱃전을 두드리는 장단에 맞춰 노래하며 떠나갔다.
"창랑의 물 맑듯 맑은 세상이라면, 갓끈을 씻고 벼슬하러 나가리. 창랑의 물 흐리듯 어지러운 세상이라면 벼슬길
버리고 물에 발이나 씻으리."
어부가 떠나 버린 뒤 그들은 두 번 다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고전 한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臨津江 (임진강) / 金富軾 (김부식) (1) | 2024.08.03 |
---|---|
현대시조의 고전 산딸기 / 이태극(李泰極) (2) | 2024.08.01 |
현대시조의 고전 -달 밤 / 이호우(李豪雨) (2) | 2024.08.01 |
현대시조의 고전 -백담 계곡 (百潭 溪谷) / 이희승(李熙昇) (1) | 2024.08.01 |
금슬-이상은(李商隱) (1) | 2024.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