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법성게(法性偈)

qhrwk 2024. 10. 23. 07:57

 

♣법성게(法性偈) ♣

초발심이 곧 정각(正覺)
초발심시변정각 (初發心時便正覺)

처음 마음을 발할 때 곧 정각을 이룬다. 처음 발심한 그것이 변치 않고
그대로 있으면 곧 부처의 경지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이 자식에게 느끼는 마음이 있지요?
내 자식이라면 밥 먹는 밥상에 올라와서 그릇을 엎고 옆에 서 똥을 싸도
귀엽기만 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그 마음이 모든 사람을 대할 때도 똑같다면 바로
보살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앉아서 어떤 병원에서 팔십이 된
누군가 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사람은 살다가 다 죽기 마련 이지."하고
담담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내 어머니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면 도인입니다.

마음에 일어난 것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고 모든 시간대에 같이
적용된다면 우리의 일어나는 마음이 곧 부처 마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생각이 일관성 없이 수시로 왔다갔다 한다는 것이죠.
"어머니가 죽어서 울었어요"

"왜 울어요?"
"사람이 죽었는데 슬프잖아요?"
"사람이 죽으면 슬퍼요?"
"아, 죽으니까 슬프죠."
"당신, 사람이 죽으면 항상 슬픕니까?"
"조금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슬픈 일이죠."
"지난 번에 김일성이 죽었다 할 때는 어땠소?"
"기뻤죠."

"사람이 죽었는데 기뻐요?"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초발심이란 출발이고 정각은 끝이라 해서,
`초발심시 변정각`이란 시작과 끝이 둘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많은 콩을 거두기 위해 콩 하나를 땅에 심습니다. 이 때 그 콩을
 "씨앗"이라 하고, 후에 열매를 맺으면 이것을 "열매"라 불러요.

 그러니까 씨앗은 시작이고 열매는 끝이라 할 수 있겠지요.
즉 같은 콩을 한 사람은 "씨앗"이라 하고 한 사람은 "열매"라 합니다.
경계를 그으면 씨앗이 되고 열매가 되고 시작이 되고 끝이 되지만,
경계가 없으면 그건 씨앗도 열매도 아니고, 시작도 끝도 아닙니다.
이를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하지요. 시작이니 끝이니 하는 것은
다 분별에서 나온 말입니다.

분별하지 않으면 시작이니 끝이니 창조니 종말이니 하는 것 이 없으며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것도 따로 없어요. 분별이 끊어진 세계에서
 본 경계를 이야기한 것이지요.

생사열반 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
생사와 열반이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생사의 세계와 열반의 세계는 정반대인데, 이것이 둘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확대하자면 분별이 끊어지면,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며, 진속, 사바세계 와
정토세계가 둘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이(理)와 사(事)의 경계가 사라져서 분별이 없다.
법계(法界)라 하면 일체의 존재가 각자 그 역할을 지켜 서로 엇갈리거나 뒤섞임 없이 
잡다한 가운데서도 질서 정연하게 조화를 유지하면서 연기하고 있는 우주 만법의 
세계를 가르 키는 말이지요.

그래서 법계란 사실 하나여서 여러 개가 있을 수 없지만, 화엄경에는 이것을
철학적으로 네 가지로 분류했어요.
사법계(事法界), 이법계(理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사사무애법계

(事事無碍法界) 인데, 

이렇게 넷으로 구분해서 보는 것을 사법계관 (四法界觀)이라 합니다.

그럼, 사법계(事法界)란 뭐냐? 차별현상계에서 보는 것을 말합니다. 

언뜻 보기에 같아 보이는 구더기 한 마리 한 마리도 자세히 보면 그 생긴 모양이 

다 다르고, 강가에 있는 모래가 수없 이 많지만 가서 비교해보면 그 크기와 모양, 

성분이 다 다르 고, 밭에서 나는 고추도 빛깔과 모양이 다 다릅니다.

바다에 일어나는 수많은 파도가 있지만 그 파도 모양과 일어 났다 사라지는
 수명도 전부 달라요. 그래 만법(萬法)이라 하는데 이런 세계를
"사법계(事法界)" 라 합니다.그런데 파도 하나하나를 볼 때는 각 파도가
수없이 생기고 사라지지만, 바다 전체를 보면 물이 그냥 출렁일 뿐
파도가 생기고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또 아이들 눈에는 물이 얼음이 되었을 때, 얼음이 생긴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물이 얼음으로 그 모양이 변했을 뿐 이지, 거기에는 따로
 얼음이 생긴 게 아니지요.
그러니까 이 삼라만상은 근원으로 돌아가 보면 다 한 가지 모양이예요.
그래서 만상(萬相)은 일상(一相)이고, 만법(萬法)은 일법 (一法)이라고 하지요.
이 하나의 세계를 이(理)의 세계라 하는 겁니다. 근본으로 돌아가면 결국
 이치는 하나다.

그러니까 사(事)의 세계가 허상인 속제(俗諦)라면, 이(理)의 세계는 실상인 진제(眞諦)가 
된다고 말할 수 있겠죠. 이런 세계를 "이법계(理法界)"라 합니다.
그런데 허상은 실상을 떠나 나타나는 게 아니지요. 고요한 바다에서
파도가 일고 파도가 가라앉으면 고요한 바다가 된다.
 바다와 파도가 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진제와 속제가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무의 근원을 따지면 나무뿌리에서 
나뭇잎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하나의 뿌리에서 하나의 줄기에서 수많은
 나뭇잎이 나와요.
그러나 사실은 나뭇잎 때문에 뿌리와 가지가 생성되는 것 이라서 잎이 뿌리를
 만든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둘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이사(理事)가 무애(無碍)하다, 이(理)와 사(事)가 둘이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차별 현상계를 "색(色)"이라 하고 그 본질을 "공(空)"이라 말하는데.
이 공과 색이 둘이 아닌 세계를, 즉 `색즉시공의 세계`를
 `이사무애법계`라 합니다.
그러면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란 뭐냐? 차별현상계 사이에서 걸림 없이
 오가는 것을 말합니다. 본질에서 현상이 드러나고 현상에서 본질로 가는 데 걸림이 없는 것을 
 이사무애라하고, 차별현상계에서 걸림 없이 오가 는 것을 사사무애
 또는 화작(化作)이라고도 합니다.

비유하면, 파도 치는 바다에 배타고 놀러 나갔다가 큰 파도 와 풍랑으로 배가 뒤집혀서 
물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살려달 라고 아우성 치는 것이 사법계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면,방파제를 단단하게 치고 그 안에서 배타고 노는 것이
이법계 에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사법계에 있는 사람은 넓은 바다에 나가서 바람과 파도를 이용해서 배를 타요. 파도를 

떠나지 않고 그 위에서 노는 겁니다. 

사사무애법계에서는 어떠냐? 파도를 타고 즐기다가 어쩌다 물에 빠져요. 
그러면 실수를 했느냐? 아닙니다. 

물에 빠진 김에 물밑에 내려가서 진주조개를 주워옵니다.
사사무애법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물에 안 빠져야 된다는 관념마저도 없습니다. 

물 속이 터지면 빠진 대로, 물 위에 있으면 위에 있는대로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