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華嚴經) 해설(解說)- 제12강 화엄경의 내용 -십지보살행
(4) 염혜지(焰慧地)
염혜지는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을 닦고 동사섭(同事攝)과 정진바라밀로 지혜가 매우 치성하는 지위이다. 보살이 이 염혜지에 머물면, 지혜로써 여래의 가문에 태어난다. 삼십칠조도품은 다음과 같다.
사념처(四念處):관신부정(觀身不淨)․관수시고(觀受是苦)․관심무상(觀心無常)․관법무아(觀法無我)
사정근(四正勤 혹은 四正斷):이생악령단(已生惡令斷)․미생악령불생(未生惡令不生)․이생선령증장(已生善令增長)․미생선령생(未生善令生)
사여의족(四如意足, 四神足):욕(欲)․정진(精進)․심(心)․사유(思惟)
오근(五根):신(信)․진(進)․염(念)․정(定)․혜(慧)
오력(五力):신(信)․진(進)․염(念)․정(定)․혜(慧)
칠각분(七覺分):택법(擇法)․정진(精進)․희(喜)․의( )․사(捨)․정(定)․염(念)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
(5) 난승지(難勝地)
난승지는 진제와 속제를 조화하여 이기기 어려운 지위이니,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와 선정바라밀을 주로 닦는다.
난승지에서는 또 보살이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세간의 기예를 모두 익힌다.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이면 모두 열어 보여서 점점 위없는 불법에 머물게 한다.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문자와 산수와 약방문과 글씨와 시와 노래와 춤과 풍악과 연예와 웃음거리와 재담 등을 다 잘하며, 나무와 꽃과 약초들을 계획하고 가꾸는 데 묘리가 있고, 금․은․마니․진주․유리․보배․옥․보석․산호 등의 있는 데를 다 알아 파내어 사람들에게 보이며, 산수가 좋고 나쁜 것을 잘 관찰하여 조금도 틀리지 아니한다.
(6) 현전지(現前地)
현전지는 세간 출세간의 일체 지혜가 다 나타나는 지위이니, 십이연기〔無明․行․識․名色․六入․觸․受․愛․取․有․生․老死〕를 관하고 반야바라밀을 성취한다.
이상에서 시설된 수행법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설명을 생략하겠다. 근본불교시대부터 소승불교시대까지 시설된 기본적이고 중요한 수행방편이었던 것이다. 이곳〈십지품〉에서는 일심에 입각하여 일승적으로 재해석되어 십지보살도의 내용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7) 원행지(遠行地)
원행지는 광대한 진리세계에 이르는 지위이니 십바라밀〔布施․ 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方便․願․力․智〕을 구족하고 특히 방편바라밀을 치우쳐 닦는다. 십바라밀을 그 주된 수행덕목으로 삼고 있는 제7원행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이 보살은 생각마다 항상 능히 10가지 바라밀을 구족한다. 왜냐하면 생각마다 대비로 으뜸을 삼고 부처님 법을 수행하여 부처님 지혜에 향하는 까닭이다.
있는바 선근을 부처님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중생에게 베풀어 줌이 단나바라밀(檀那波羅蜜)이요, 일체 번뇌의 열을 멸함이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이요, 자비로 으뜸을 삼아 중생을 해롭히지 않음이 찬제바라밀( 提波羅蜜)이요, 수승하고 선한 법을 구하여 만족해 싫어함이 없는 것이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이요, 온갖 지혜의 길이 항상 앞에 나타나서 일찍이 산란하지 않음이 선나바라밀(禪那波羅蜜)이요, 모든 법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능히 인정하는 것이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요, 한량없는 지혜를 능히 출생함이 방편바라밀(方便波羅蜜)이요, 상상품의 수승한 지혜를 구함이 원바라밀(願波羅蜜)이요, 모든 마군들이 능히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역바라밀(力波羅蜜)이요, 일체 법을 실제와 같이 요달해 아는 것이 지바라밀(智波羅蜜)이다. 불자여, 이 십바라밀은 보살이 생각마다 모두 구족하니라.
(8) 부동지(不動地)
부동지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 동요하지 않는 지위이니 원바라밀을 치우쳐 닦는다. 마음과 뜻과 식으로 분별하는 생각을 여의어서 집착할 바가 없음이 마치 허공과 같으며, 일체 법의 성품이 허공과 같음에 들어서 다시는 남이 없는 법에 들게 된다.
이 부동지에서는 무공용각혜(無功用覺慧)로 일체지지의 경계를 관하며, 중생의 좋아함을 따라서 갖가지 몸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한다. 이렇게 해서 나타내 보이는 부처님 몸은《화엄경》의 다른 품에서 보이는 십불설과 함께 후에 화엄교학에서는 이종십불설로 나타나게 된다. 이 점도 다음에 고찰하기로 한다.
(9) 선혜지(善慧地)
사무애지〔法․義․辭․樂說〕를 얻어 대법사가 되어 설법하는 지위이니 역바라밀이 가장 수승하다.
(10) 법운지(法雲地)
대법우를 비내리는 지위이니, 지혜바라밀이 가장 수승하다.
경에서는 이상의 십지경계를 바다의 10종 이익에 배대하여 다시 한 번 보이고 있다. 큰 바다의 10가지 이익은 다음과 같이 설해지고 있다.
차례로 점점 깊어진다.
송장을 받아두지 않는다.
다른 물이 그 가운데 들어가면 모두 본래의 이름을 잃는다.
모두 다 한맛이다.
한량없는 보물이 있다.
바닥까지 이를 수 없다.
넓고 커서 한량이 없다.
큰 짐승들이 사는 곳이다.
조수가 기한을 넘기지 않는다.
큰 비를 모두 받아도 넘치지 않는다.
십지보살의 행도 그와 같다.
환희지는 큰 서원을 내어 점점 깊어지는 까닭이다(십대원).
이구지는 모든 파계한 송장을 받지 않는 까닭이다(십선업).
이구지에서는 보살이 성품 자체에 일체 나쁜 것이 없어서 나쁜 업은 일체 지을 생각조차 없으므로 십선업도를 닦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바다가 송장이나 나쁜 오물을 속에 담겨 두지 않고 밖으로 내보내는 공덕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 속에 일체 번뇌를 담고 있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화가 날 때 속으로 화를 참고 있다면 이는 속에 번뇌를 담고 있는 것이 되겠다. 그렇다고 남에게 화풀이를 해서 화를 해소시키라는 것은 아니다. 화 자체에 자성이 없어서 아예 화낼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그 이치가 터득이 안 돼서 그래도 화가 난다면 자비관을 닦아가도록 경에서 교설하고 있다.
발광지는 세간에서 붙인 이름을 여의는 까닭이다(삼법인).
세간의 유위법을 잘 관찰하면 그 유위법이 좋아할 것이 아닌 줄 알게 되므로 가치관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염혜지는 부처님의 공덕과 맛이 같은 까닭이다(삼십칠조도법).
보리를 돕는 수행법은 어떤 것을 닦든지 다 부처님 세계에 도달되는 일승 수행법이 된다.
난승지는 한량없는 방편과 신통과 세간의 보배들을 내는 까닭이다(사성제). 이 난승지는 이기기 어려운 단계를 넘어서는 자리이다. 세간지와 출세간지가 하나 되어서 중생을 위해 갖가지 방편을 시설하고 있는 자리이다. 모든 고통을 여의고 열반세계로 인도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현전지는 인연으로 생기는 깊은 이치를 관찰하는 까닭이다(12연기). 우리 존재는 모두 상의상관의 인연 속에 있다. 이 연기의 진리는 불교의 근본진리로서 그 순역관을 통해서 생사의 고통을 해결하고 지혜를 증득하게 된다. 이 또한 다 마음에 의해서 생겨나는 깊은 도리를 관찰하는 자리이므로 바다가 깊고 깊어서 바닥까지 다다를 수 없는 데 비유되고 있다.
원행지는 넓고 큰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를 잘 관찰하는 까닭이다(10바라밀). 모든 바라밀로 부처님의 광대한 세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부동지는 광대하게 장엄하는 일을 나타내는 까닭이다(무생법인).
선혜지는 깊은 해탈을 얻고 세간으로 다니면서 사실대로 알아서 기한을 어기지 않는 까닭이다(사무애변).
법운지는 모든 부처님 여래의 큰 법의 비를 받으면서 만족함이 없는 까닭이다(대법우).
그래서 끝없는 원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경에서는 이상의 십지보살 행과로서〈십정품〉내지〈이세간품〉의 11품에서 등각과 묘각의 경계를 설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보살도는《화엄경》이 일승보살도를 펼치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게 한다. 십지보살도는 회삼귀일에 바탕한 일승보살도로서 보살도의 정화로 간주되어 왔던 까닭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초지는 원을 세우는 자리이니 대승보살은 원이 없으면 보살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원을 세우는 것은 기본적인 보살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제2지에서의 십선업도(十善業道)는 근본교설에서는 십선업으로서 재가불자의 윤리 도덕에 해당하는 항목으로 여겨졌던 것이, 대승불교도들이 지키는 십선계(十善戒)로서 대승적 의미가 부여되었고, 다시《화엄경》에서는 제2지 보살이 닦는 수행덕목으로 들어오고 있다.
제3지에서는 삼법인에 해당하는 일체 법을 관찰한다.
제4지에서 닦는 삼십칠조도품은 소승불교시대에 종합된 수행덕목이다. 대승은 소승을 비판하고 일어났던 것임을 볼 때《화엄경》이 일승설이기에 이 37조도품 역시 보살의 수행방편으로 다시 해석되어 수용된 것이라 하겠다.
제5지에서 닦는 사성제는 처음 대승불교가 일어났을 때는 대승에서 자리매김하기를, 성문승이 주로 닦아가는 수행법이고 이 사성제를 통해서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되는 수행법이다.
제6지의 십이연기를 관하는 것은 소승에서 연각이 닦아가는 수행법으로서 역시 아라한과까지 도달된다고 한 실천법이다.
다시 말해서 삼승(三乘)이라고 할 때 성문승․연각승․보살승을 말하는데, 성문승․연각승은 소승이고 보살승은 대승이다. 처음 대승불교가 일어날 때는 보살은 성문․연각과는 다르다고 하고, 대승은 소승을 비판함으로써 일어났던 것이다. 성문․연각은 아라한 정도의 깨달음밖에 성취할 수 없고 보살은 6바라밀행을 닦아서 부처가 될 수 있는 자로 보았다. 그때 성문과 연각이 닦는 대표적인 수행법이 사성제와 십이연기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화엄경》에서는 이 두 수행법이 제5지와 제6지 계위의 보살이 닦는 수행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보살의 바라밀행은 다음 제7지 보살이 닦는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10바라밀이 교설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화엄경》십지보살도는 회삼귀일에 바탕한 일승보살도로서 보살도의 정화로 간주되어 왔던 것이다.
여기서 이상의 모든 바라밀에 관한 교설을 총합해 보자. 다음과 같이 십바라밀을 약설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자기에게 있는 선근과 내외의 모든 가진 것을 중생에게 베풀어 주어 마음이 만족하게 하되 집착하는 바가 없음이 단나바라밀이다.
일체 번뇌의 열을 멸하고, 부처님의 계법을 청정하게 지니어 범계하지 아니하면서도 집착하지 아니하고 아만을 영원히 여의는 것이 시라바라밀이다.
부처님 인욕에 머물러 자비를 으뜸으로 삼아 중생을 해롭게 하지 않으며 온갖 나쁜 것을 모두 참으면서 여러 중생에게 마음이 평등하여 흔들리지 않음이 찬제바라밀이다.
수승하고 선한 법을 항상 닦아서 게으르지 아니하고 퇴전치 아니하며 용맹한 세력을 제어할 이 없고 모든 공덕에 만족함이 없는 것이 비리야바라밀이다.
온갖 지혜의 길이 항상 앞에 나타나서 바르게 생각하는 힘으로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한 경계를 생각하고 온갖 삼매문에 들어가는 것이 선나바라밀이다.
한량없는 모든 법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사실대로 관찰하고 분별하여 실상인을 얻으며 온갖 지혜의 지혜문에 들어가서 영원히 휴식함을 얻음이 반야바라밀이다.
한량없는 지혜를 능히 출생하여 중생을 교화함에 그들의 즐겨함을 따라 몸을 나타내며 일체 행하는 법에 물들지 아니하고 탐착하지 아니함이 방편바라밀이다.
끝까지 일체 중생을 성취하며, 일체 세계를 장엄하며, 일체 부처님께 공양하며, 장애없는 법을 통달하며, 법계에 가득한 행을 수행하며, 여래의 지혜를 증득하니 보현의 큰 서원을 만족하여 마음이 동요하지 아니함이 원바라밀이다.
온갖 자재한 신통을 나타내는 심심력(深心力)․심신력(深信力)․대비력․대자력․총지력․변재력․바라밀력․대원력․신통력․가지력 등 갖가지 힘을 갖추어 중생들을 널리 제도함에 모든 이론(異論)과 마군들이 능히 깨뜨릴 수 없는 것이 역바라밀이다.
일체 법을 실제와 같이 알며 모든 중생이 여래와 더불어 성품이 같은 줄 알아 모든 부처님 법에 두루 들어가는 것이 지바라밀이다.
이러한 십바라밀을 구족하여 대비를 으뜸으로 삼고 부처님 지혜에 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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