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華嚴經) 해설(解說)- 제14강 화엄경의 내용-여래출현․제8회 이세간품
여래출현의 10종법 가운데 이어서 네번째 여래심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4) 여래심
여래심은 바로 여래성기심으로서 여래출현에 있어서 특히 중요시되어온 교설 부분이다. 이 역시 10종심이 있음을 보이며 이 마음은 지혜와 같이 쓰이고 있다. 여래의 마음을 모두 볼 수는 없으나 다만 지혜가 한량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여래의 마음 또한 10가지로 교설되어 있는데 그 첫째는 여래의 지혜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마치 허공이 모든 물건의 의지가 되지만 허공은 의지한 데가 없으니, 여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지와 출세간지의 의지가 되지만 여래의 지혜는 의지한 데가 없다.
이렇게 비유로 여래의 지혜를 차례로 설하고 있다.
그 중에 열번째 마음은 특히 주목되어온 여래의 지혜이다. 그것은 여래의 지혜는 이르지 못하는 데가 없다는 무처부지(無處不至)의 여래심이다.
여래의 지혜는 이르지 못하는 데가 없다. 왜냐하면 한 중생도 여래의 지혜를 갖추어 가지지 않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허망한 생각과 뒤바뀐 집착으로 증득하지 못하니, 만일 허망한 생각을 여의면 온갖 지혜가 곧 앞에 나타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유로서 큰 경책을 들고 있다. 이를 미진경권유(微塵經卷喩) 또는 진함경권유(塵含經卷喩)라 부르고 있다.
이 미진경권유는 분량이 삼천대천세계와 같은 경권이 있어 삼천세계에 있는 일이 모두 쓰여 있으나, 이 큰 경책이 한 티끌 속에 있어서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며, 한 작은 티끌속과 같이 모든 작은 티끌 속도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지혜가 밝은 사람이 청정한 천안을 구족하여 이 경책이 작은 티끌 속에 있어 이익이 되지 못함을 보고 꾸준히 노력하는 힘으로 저 티끌을 깨뜨리고 이 경책을 내어서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즉시 방편을 내어서 작은 티끌을 깨뜨리고 이 큰 경책을 꺼내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이익을 얻게 하였으며, 한 티끌과 같이 모든 티끌을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다.
여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한량이 없고 걸림이 없어서 일체 중생을 두루 이익되게 하는 것이 중생들의 몸속에 갖추어 있지만, 어리석은 이의 허망한 생각과 집착으로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이익을 얻지 못한다.
여래께서 청정한 지혜눈으로 법계의 모든 중생을 두루 관찰하고 말씀하시기를 "이상하고 이상하다.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를 구족하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가. 내가 마땅히 성인의 도를 가르쳐서 허망한 생각과 집착을 영원히 여의고 자기의 몸속에서 여래의 광대한 지혜가 부처와 같아서 다름이 없음을 보게 하리라" 하시고, 곧 저 중생들로 하여금 성인의 도를 닦아서 허망한 생각을 여의게 하며 허망한 생각을 여의고는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를 얻어서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한다.
이처럼 보살은 마땅히 여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무처부지의 여래심은 화엄가들에게 매우 중요시되어 왔던 부분이다. 우선 티끌 속에 경권이 들어 있다고 해서 여래장사상의 전거가 되었다. 그런가하면 여래장사상을 바탕으로 한 법계연기사상의 전거도 된다. 특히 미진을 깨뜨리고 경권을 꺼내어 이익을 준다는 측면에서 이는 여래성기의 출처가 되어, 매우 주목을 받은 여래출현의 경계인 것이다.
고려시대의 보조국사 지눌도〈여래출현품〉의 이 대목을 보고 불심(佛心)과 불어(佛語)가 하나인 줄을 깨닫고 너무 기뻐서《화엄경》을 머리에 이고 눈물을 흘렸다고 자술하고 있다. 이 여래심의 여래출현상은 선교일치의 경증이 되고 있는 것이다.
(5) 여래경계
여래의 경계란 여래의 지혜가 활동하는 경계이니, 곧 중생계를 떠나 있지 않다. 그래서 모든 세간의 경계가 여래의 경계이다.
보살은 마땅히 마음의 경계가 여래의 경계임을 알며, 마음의 경계가 그지없고 한량없고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이러하게 생각하고 분별함으로써 이러이러하게 한량없이 나타나는 까닭이다〔如是如是思惟分別 如是如是無量顯現〕. 이 경계 역시 일체유심조의 화엄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6) 여래의 행
여래의 지혜가 중생에게 응하는 것은 행에 의하여 가능하게 된다. 중생을 이롭게 하는 여래행은 보살의 공덕행으로 나타난다. 여래행은 걸림없는 행이며, 진여의 행이 여래의 행이다.
그러나 진여가 생하지도 움직이지도 일어나지도 않듯이, 여래행 또한 불생(不生)․부동(不動)․불기(不起)이다. 기이불기(起而不起)인 것이다. 여래행은 시간의 범주를 초월하므로 현재에 활동하되 불기(不起)인 것이다. 이것이 성기(性起)인 것이다.
(7) 여래의 성정각
여래의 지혜와 행의 근거가 곧 보리(菩提)이다. 부처님의 보리는 바다와 같아서 모든 중생의 마음과 근성과 욕망을 두루 나타내면서도 나타내는 것이 없다. 부처님의 보리는 모든 글자로도 표현할 수 없으며, 모든 음성으로도 미칠 수 없으며, 모든 말로도 나타낼 수 없으나 마땅함을 따라서 방편으로 열어 보인다.
부처님의 보리는 허공과 같아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거나 이루지 못하거나 늘어나고 줄어듦이 없다. 보리는 모양도 없고 모양 아님도 없으며 하나도 없고 여러 가지도 없는 까닭이다.
보살마하살은 자기의 마음에 생각생각마다 항상 부처가 있어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을 알아야 한다.
(8) 여래의 전법륜
여래는 마음의 자유자재한 힘으로써 일어남도 없고 굴림도 없이 법륜을 굴리니, 모든 법이 항상 일어남이 없음을 아는 까닭이다. 그러나 글자와 온갖 말로써 법륜을 굴리니, 여래의 음성은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는 까닭이다.
일체 중생의 갖가지 말이 다 여래의 법륜을 떠나지 않았으니, 왜냐하면 말과 음성의 실상이 곧 법륜이기 때문이다.
(9) 여래의 반열반
보살이 여래의 열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근본 성품을 알아야 한다. 진여의 열반처럼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여, 열반은 생겨나는 일도 없고 벗어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만일 법이 생겨남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면 멸함이 없다.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여래의 열반을 보이고 있다.
여래는 중생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내게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시며 중생으로 하여금 사모함을 내게 하려고 열반함을 보이신다. 그러나 여래는 참으로 세상에 출현하심도 없고 열반하심도 없다. 왜냐하면 여래는 청정한 법계에 항상 계시면서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열반함을 나타내시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해가 떠서 세간에 두루 비치되, 깨끗한 물이 있는 그릇에는 그림자가 나타나서 여러 곳에 두루하지만 오거나 가는 일이 없으며, 그릇이 깨지면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다.
(10) 견문․친근․선근
경에서는 보살이 여래의 정등각을 보고, 듣고, 친근하여 심은 선근이 모두 헛되지 않은 줄을 알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깨달음의 지혜를 내는 까닭이며, 내지 온갖 훌륭한 행을 이루는 까닭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여러 좋은 비유로 부처님을 뵙고 말씀을 듣고 가까이 모신 선근공덕이 다함이 없음을 보이고 있다.
먼저 금강 비유를 들고 있다. 장부가 금강을 조금만 삼켜도 소화가 되지 않고 몸을 뚫고서 밖으로 나오니, 금강은 육신에 섞여서 함께 있지 않는 까닭이라고 한다. 이처럼 여래께 조그만 선근을 심어도, 모든 유위행과 번뇌의 몸을 뚫고 지나가서 무위의 가장 높은 지혜에 이르니, 이 선근은 유위행과 번뇌와 함께 머물지 않는 까닭이다.
또, 가령 마른 풀을 수미산처럼 쌓았더라도 그 가운데 겨자씨만한 불을 던지면 모두 다 타고 마니, 불은 능히 태우기 때문이다. 그처럼 여래에게 조그만 선근을 심어도 모든 번뇌를 태워 버리고 필경에 무여열반을 얻는다.
그리고 설산에 있다는 진귀한 선견이란 약나무의 비유를 들어서 여래도 약왕이라 일컫고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함을 말하고 있다. 여래의 육신을 보는 이는 눈이 깨끗하고, 여래의 이름을 듣는 이는 귀가 깨끗하고, 여래의 계행 향기를 맡는 이는 코가 깨끗하고, 여래의 법을 맛본 이는 혀가 깨끗하여 광장설을 갖추어 말하는 법을 알고, 여래의 광명에 닿은 이는 몸이 깨끗하여 필경에 위없는 법신을 얻고, 여래를 생각하는 이는 염불하는 삼매가 청정하여진다.
뿐만 아니라 만일 중생이 여래께서 지나가신 땅이나 탑에 공양하더라도 역시 선근을 갖추어서 모든 번뇌와 근심을 멸하고 성현의 즐거움을 얻는다.
그리고 가령 어떤 중생이 부처님을 보거나 들으면서도 업에 덮여서 믿고 좋아함을 내지 못하더라도, 역시 선근을 심게 되어 헛되지 않을 것이며, 내지 필경에는 열반에 들게 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살은 마땅히 이같이 여래께서 계신 데서 보고 듣고 친근하면 그 선근으로 모든 나쁜 법을 여의고 착한 법을 구족하리라 원하고, 견문 친근하여 선근을 쌓도록 강조하고 있다.
38. 이세간품
제8회는〈이세간품〉한 품으로 보광명전 부처님 처소에서 보현보살이 불화엄삼매에 들었다가 일어나 보혜보살의 200가지 질문을 받고 한 물음에 10가지씩 모두 2,000가지의 대답을 한 것이다. 즉, 신․십주․십행․십회향․십지․등각․묘각 등 모든 지위를 포섭한 일체 보살행을 다시 한 번 총괄적으로 보이고 있다.
여기서는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의지(依支)인가로 시작해서 무엇이 보살의 행이며, 선지식이며, 내지는 어찌하여 여래 응공 정등각께서 반열반하심을 보이셨는지를 설하고 있다. 모든 보살도를 총괄하면서 이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계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세간이라는 의미는 세간을 떠난다, 세간을 여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우선 세간이 무엇이며 여읜다는 것은 어떠한 경계인가 하는 것을 짚어보게 한다. 그에 대해서 화엄가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그것을 종합해서 한 마디로 말하면 이세간이란 처렴상정(處染常淨)을 말하니 동사섭으로 중생계에 있으나 물들지 않는 경계이다. '처세간여허공 여연화불착수(處世間如虛空 如蓮花不着水)'라고 한 연꽃경계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이〈이세간품〉다음에 오는,《화엄경》의 마지막 품인〈입법계품〉에서 법계(法界)에 들어간다고 함도 다시 들어갈 법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불교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엄경(華嚴經) 해설(解說)- 제16강 화엄경의 내용-보현행원품 (0) | 2025.02.17 |
---|---|
화엄경(華嚴經) 해설(解說)- 제15강 화엄경의 내용-제9회 입법계품 (0) | 2025.02.17 |
화엄경(華嚴經) 해설(解說)- 제13강 화엄경의 내용-제7회 11품 (0) | 2025.02.15 |
화엄경(華嚴經) 해설(解說)- 제12강 화엄경의 내용 -십지보살행 (0) | 2025.02.15 |
화엄경(華嚴經) 해설(解說)- 제11강 화엄경의 내용 -제6회 십지품 (0) | 2025.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