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早 春 [조 춘] 이른 봄 / 雪 竹 [설 죽]

qhrwk 2024. 10. 26. 09:42

 

早 春 [조 춘] 이른 봄 / 雪 竹 [설 죽] 

春雨梨花白
춘우이화백
봄비 내리자 배꽃이 하얗고

東風柳色黃
동풍유색황
봄바람 불자 버들개지 노랗네

誰家吹玉笛
수가취옥적
옥피리를 누가 부는가

搖揚落梅香
요양락매향
매화향기 흩날리누나

피리 소리 따라 매화향기가 흩날린다는 표현은 자연물과 자신의 심경이 하나가 되는
경지를 노래한 것이다. 설죽도 나이를 먹으니 한 남성에게 의탁해야 했다.
여종 출신의 여류 시인은 누구에게 의탁해야 하는가? 설죽은 양반가의 첩이 되는 길을
 택했다. 수촌(水村) 임방(任埅)이 지은 수촌만록(水村漫錄)에는 설죽이 석전(石田)
성로(成輅)에게 몸을 의탁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성로가 봉화 유곡의 정자에
도착하자 사대부들이 모였다.

이때 설죽도 자리를 함께 했다. 사대부들은 석전 성로가 죽었을 때 부를 만시(輓詩)를 지어
좌중을 울리면 성로의 시침을 들게 추천하겠다고 말했다. 설죽은 즉석에서 만시를
지었고 좌중은 모두 눈물을 흘렸는데 이때부터 그녀의 시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전하고 있다.

※설죽
조선에 한 여인이 있었다. 영특했고 미모도 뛰어났다. 그러나 신분이 여종이었다.
신분제 사회에서 종으로 태어난 여인에게 미모며 영특함은 오히려 짐일 수 있었다.
영특한 머리로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의 설죽(雪竹)이 그런 여인이다. 설죽의 원래 이름은 알현(閼玄)인데

생몰연대는 불분명하다. 취선(翠仙), 또는 월연(月蓮)이란 호를 갖고 있었는데
조선 중기 사림파의 일원이었던 충재(冲齋) 권벌(權橃) 가문의 여종이었다.
권벌의 손자 석천(石泉) 권래(權來)의 시청비(侍廳婢)라고 전하고 있으니 대개 15세기

말엽에서 16세기 초엽의 인물일 것이다. 사대부가 여인들도 언문이라 불렸던 한글 이외에
진서(眞書)라고 불렸던 한자를 배우기는 쉽지 않은 시대였다.
비슷한 시기 명문 반가(班家) 출신인 허난설헌이 오빠들에게 학문을 배운 것도
이례적이라고 전해지는 판국에 여종 출신의 설죽이 어떻게 한시를 지을 정도의 학문을
배울 수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자신의 딸에게도 한문을 가르치지 않는데 여종 출신에게 배우게 했을 리가 만무하다.
그만큼 그녀는 영특했던 것이다. 원유(遠遊) 권상원(權尙遠)의 시문집 백운자시고(白雲子詩稿)말미에 필사된 설죽의 시는 166수에 달한다. 설죽이 자유자재로 한시를 지을만큼
뛰어난 학문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는데 시들은 한결같이 빼어난 수준이다. 
다음편에 계속

※ 청말근대 화가 오창석(吳昌碩)의 <종정삽화(鐘鼎揷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