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에 시정도 상쾌해
雲葉離離霽後天(운엽리리제후천)
風光澹蕩畵欄邊(풍광담탕화란변)
繞窓淸澗初聽瑟(요창청간초청슬)
近水高樓若泛船(근수고루약범선)
楓樹嫩黃輸客興(풍수눈황수객흥)
桂林瀟灑重仙緣(계림소쇄중선연)
新晴月色金沙淨(신청월색금사정)
更覺詩情倍爽然(갱각시정배상연)
구름 잎 드문드문 비 갠 뒤의 하늘
풍광도 맑고 맑은 단천 난간의 갓
창을 두른 맑은 새내 처음 듣는 비파이고
물 가까운 높은 누대 떠있는 배 같구나
단풍나무 연한 누르름 나그네 흥 실어오고
계수나무 숲 시원스레 신선 인연 거듭하다
새로 개인 달빛 금모래도 깨끗해
시의 정서 배나 상쾌함 다시 깨닫다.
함홍대사의 ‘가을 비 개다(秋雨新晴)’한 시이다. 맑게 개인 가을의 풍경을 시인의
안목으로 그려낸 것. 창 밖의 새내 울림을 비파소리로 듣고 높이 솟은 누대를
가을 물결 위에 떠있는 배로 이해하고 있다. 담담한 가을 물색을 시인의
상상으로 환치시키고 있다.
지난 호에서는 학의 울음을 경전을 외우는 소리로 미화시키더니,
여기서는 시냇물 소리를 비파 소리로 듣고 있다. 무정물을 유정화시키는
전형적 솜씨이다. 하기야 인간의 솜씨로 만들어진 소리가 이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를 따를 수 있겠는가. 물소리가 세상의 비파보다 나은 것은 당연하다.
그저 어려움 없이 들을 수 있는 흔한 일이기에 무심히 여겨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세속 삶의 어리석음이겠지.
누대 주변에는 단풍 잎에 연하게 물든 누르고 붉음이 나그네의 흥을
실어오고(輸) 있다. 흥을 듬뿍 실어다 부쳤다. 누대가 물 위에 떠있다 함도
평상인의 범상한 생각으로는 그리 쉽게 떠오르는 공간 감각이 아니다.
누대라면 산이 공간이고 배라면 바다가 공간이다. 이 어울릴 수 없는 공간을
한 곳으로 몰아왔다. 물에 가깝다는 배경설정이야 있었지만, 그래도 시인의
상상적 공간구성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못하다.
스님은 철저하게 시인이다. 이러한 가을 경치에서 시상이 떠오름은 역시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 시정을 돋우기 위해서 맑게 떠오르는 달이 매개물이
되었지만 결론을 배나 더한다는 시정으로 마무리 하는 것은 역시
시인으로서의 자연 애호와 감상의 바른 안목에서 오는 것이다. 금모래란
표현이 스님의 언어 선택에 대한 자신의 고백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이종찬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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