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관
어느 학자가 성자를 만나러 갔다.
그는 머리에 커다란 경전 꾸러미를 이고 있어서 성자의 오두막에 도달할 때쯤 그는 거의 죽을 것 같았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성자에게 물었다.
“신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는 경전 꾸러미를 여전히 머리 위에 이고 있었다.
성자가 말했다.
“이보시게, 우선 그 꾸러미를 내려놓으시게.”
학자는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도 과감하게 짐을 내려놓았다.
자신의 영혼에 담아둔 짐을 내려놓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그는
경전 꾸러미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성자가 말했다.
“이보게, 그 손도 놓게나.”
그는 용기가 많은 사람이었던 게 분명하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모아서 그가 꾸러미에서 손을 빼냈기 때문이다.
그때 성자가 말했다.
“자네는 사랑을 아는가? 자네의 두 다리는 사랑의 길을 걸어보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사랑의 사원에 들어가 보게.
사랑을 살아보고, 사랑을 알고 나서 다시 돌아오게. 그런 연후에 내가 반드시 자네를 신에게 데려가줄 수 있네.”
학자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학자로서 갔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지식 더미를 뒤에 남겨두었다.
그 사람은 분명 범상치 않은 사람이고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다.
지식을 포기하는 것보다 왕관을 포기하는 게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식은 에고의 마지막 지원군이다. 그러나 사랑을 위해서는 반드시 지식을 버려야 한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이다. 하지만 사랑의 진짜 적은 에고이다. 그리고 증오는 에고의 산물 중에 하나이다.
집착, 체념, 욕망, 욕망으로부터 자유, 탐욕, 증오, 질투, 분노, 적대감은 모두 에고의 산물이다.
에고는 그 범주가 매우 넓다.
성자는 그 학자와 마을 어귀로 가서 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 사람은 그럴 자격이 있었다.
성자는 그의 용기에 환호했다. 용기가 있을 때, 종교가 탄생할 수 있다. 용기는 자유로 이끌고, 자유는 그대를 진리와
마주하게 해준다.
그러나 몇 년이 흘렀다. 성자는 그 남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지쳤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침내 성자는 직접 그를 찾아 나섰고 마침내 그를 발견했다.
그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을에서 춤을 추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그를 알아보는 것조차 어려웠다.
행복이 그를 되살아나게 만들었다.
성자가 그를 멈춰 세우고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왜 돌아오지 않았는가? 나는 자네를 기다리다가 지쳐버렸네. 그래서 내가 직접 자네를 찾아온 걸세.
자네는 신을 찾고 싶지 않은가?”
그 사람이 말했다.
“아닙니다. 사랑을 발견한 바로 그 순간, 저는 신도 함께 발견했거든요.”
- 오쇼의 <초월의 등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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