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법정스님 1주기…30년 우정 나눈 이해인 수녀 인터뷰

qhrwk 2022. 1. 9. 11:35

♣법정스님 1주기…30년 우정 나눈 이해인 수녀 인터뷰

 

매일경제 | 입력 2011.02.27 17:25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도 말고,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지체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주기 바란다."불꽃에 타들어가는 마지막까지 '무소유'를 실천한 그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돈다.

비움으로써 오히려 넉넉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는 가르침을 주고 떠난 법정 스님.

스님 입적 1주기인 28일(음력 기준)을 맞아 종교와 성은 다르지만 같은 수행자이자 청빈(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는 이해인 수녀(66ㆍ부산)에게 전화를 걸었다.

30년 넘게 우정을 맺은 그를 통해 스님의 무소유 삶과 정신을 되돌아보자는 취지다.

 

 

세레명 '클라우디아'로 스님에게서 '구름수녀님'이라고 불렸던 수녀는 "암 환자지만 더 나빠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살고 있다"며 기억을 서서히 되돌렸다.

-'스님이 곁에 없구나'라는 느낌은 언제 받으시는지요.

 

▶스님의 부재를 슬퍼하는 국내외 독자들의 편지를 받을 때, 스님의 모습이 새겨진

책갈피를 볼 때, '맑고 향기롭게' 소식지에 스님의 새 글이 아닌 옛 글이 실려 있는 것을

볼 때 스님이 이 세상에 안 계신 일이 더욱 실감되곤 합니다.

 

-1976년 '민들레 영토'로 인연을 맺으신 뒤 30년 넘게 우정을 나눈 비결은 무엇인가요.

▶너무 자주 연락한다거나 지나친 통교보다는 늘 서늘하고 지혜롭게 중도를 지키려고 노력했기에

긴 세월의 우정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주고받는 편지에도 개인의 어떤 감정보다는 주로 자연이나

좋은 책에 대한 이야길 더 많이 하였지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지.

▶제가 글씨를 늘 흘려쓰는 버릇이 있어 편지를 보내면 해독하기 힘들다고, 수행자는

글씨도 늘 반듯하고 단정해야 한다며 걱정하셨지요. 그러고도 너무 심하게 꾸지람했다

싶으면 후에 그 덕에 대충 읽어버리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며

위로를 해주시기도 했답니다. 대범하고 냉정한 듯 보여도 스님의 여린 속마음이 읽혀지곤 하였지요.

절보다는 성당 쪽에서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이름 없는 순례자'라는 책을 구해

보내달라거나 영화 '갈매기의 꿈' 주제음악이 담긴 음반을 보내달라는 부탁을 제게

하기도 하셨습니다.

 

-수행자가 아닌 '인간 법정'은 어떤 분이었나요.

▶'야단 맞고 싶으면 언제든 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뜻은 언제라도 기꺼이 충고를 해

줄 수 있는 도반임을 내비친 표현이라고 여겨집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스무 번도 넘게 읽고 수십 권을 사서 선물했다는 내용이 '영혼의 모음'에도 나오듯

스님은 늘 청정하고 맑은 동심을 지니셨고, 순수한 소년의 모습을 잃지 않고 사신

분이셨습니다.

 

-스님 글 중에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좋은 글들이 많지만 요즘은 특히 '아름다운 마무리'에 나오는 이 구절이 마음에 남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다."

 

-같은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 수행자와의 친분을 통해 어떤 것을 배우게 되나요.

▶타 종교인과의 만남을 통해 막연히 추측으로 알고 있거나 배타적인 선입견으로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존경과 이해를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가능하면 서로 자주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수녀님과 가까웠던 김수환 추기경과 장영희ㆍ박완서 선생님이 최근 몇 년 사이 세상을

떴습니다. 죽음이란 어떤 걸까요.

▶'죽음이 삶 속에 숨어 있네'라고 외칠 만큼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이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죠. 바로 며칠 전에 만나서 웃고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을 시시로 경험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스님의 무소유 삶은 우리 사회에 큰 가르침을 줬습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에서

법정 스님이 하신 말씀인데 참 좋지 않은가요. 누군가가 나에게 해주길 바라는 것을 내가 먼저 해 줄 수 있는

선선한 사랑과 용기를 지니고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열심히 걸어가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사소한 것에서도 큰 감사를 발견할 수 있는 소박함을 지니고,

그러기 위해 내면을 가꾸는 명상과 기도도 꾸준히 하면서 말입니다.

 

[이향휘 기자] *Y-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