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대(淸代) 화가 이육(李育)의 <출욕도(出浴圖)>
빈호소옥(頻呼小玉)
一段風光畵不成
일단풍광화불성
고운 맵시 그리려도 그리지 못하리니
洞房深處陳愁情
동방심처진수정
깊은 규방에 앉아서 애타는 심정만 풀어놓네
頻呼小玉元無事
빈호소옥원무사
자꾸 소옥이를 부르지만 원래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네
祗要檀郞認得聲
지요단랑인득성
오직 님께서 제 소리를 알아듣도록 하려는 것일 뿐
- 당나라 현종의 총애를 받았던 양귀비(楊貴妃)가 정인(情人)인 안록산(安祿山)을
그리워하여 지은 소염시(小艶詩)라 한다. 송나라 때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양귀비는 현종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뒤로는 안록산과 놀아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가
깊어지자 안록산은 수시로 양귀비의 처소를 찾곤 했다.
문제는 양귀비와 현종이 함께 있을 때다. 이럴 때 안록산이 뭣모르고 찾아오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양귀비는 현종이 돌아가고 혼자 있을 때 안록산이 나타나면 "소옥아!, 소옥아!"하고
불러 안에 혼자 있음을 알렸다.
시비인 소옥에게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안록산에게 안에 임금이 없으니 들어와도 좋
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던 것이다.
양귀비의 입에서 나온 '소옥아!'라는 소리와, '님에게 소식을 전하려는 양귀비의
의도(내심)'를 간화선(看話禪) 수행에서는 언어문자와 근원적인 본래심에 비유하고 있다.
안방 깊숙한 곳에 있는 양귀비가 시녀 소옥의 이름을 자꾸 부르는 것은 창 밖에 있는
낭군에게 "나 여기 있다"는 자기의 존재와 "임금(현종)이 가고 없다"는 현재 상황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 명(明)나라 화가 십주(十州) 구영(仇英)의 <귀비효장(貴妃曉粧)>
이 시는 오조법연(五祖法演) 선사가 진제형(陳提刑/覺民) 거사에게 '선(禪)'을 이해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처음 인용한 이후 선가(禪家)에서 격외언어(格外言語)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법연이 진제형에게 소염시를 들어 설할 때 법연의 제자인 환오극근(?悟克勤) 선사가
창 밖에서 이를 듣고 깨달음을 얻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선지(禪旨)나 심요(心要)는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형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과 글은 불가피한 방편일 뿐이다. 방편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상어로 전달된다.
여기에 나오는 '소옥아! 소옥아!'하는 말이나 '뜰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 할(喝), 방(棒) 등이
그것이다. 이들 방편에 동일(同一)한 그 무엇, 즉 만법(萬法)에 공통되는 그 무엇, 달리 말해서
만법이 귀일(歸一)하는 그 하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하나를 선가(禪家)에서 마음(心) 혹은
자성(自性)이라고 하는 것이다.
심심하면 아씨는 소옥이를 부르지
가보면 언제나 그냥 불렀어
담 너머 서성이는 내 님아 들으소서
그래서 일도 없이 소옥아 소옥아
- 소염시(小艶詩)의 전문은 ≪전등록≫ 제28권 〈國師三喚 侍者訟〉(Z.137∼200. c)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一段風光畵難成 洞房深處暢予情
頻呼小玉元無事 只要檀郞認得聲
일본 夢窓疎石의 ≪몽중문답(夢中問答)≫ 권 하(岩波文庫本)에도 아래와 같이
수록하고있다.
一段風光畵難成 洞房深處陳愁情
頻呼小玉元無事 只要檀郞認得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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