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반공에 솟은 듯 //혜즙대사의 시
御風千인上(어풍천인상)
身在半天中(신재반천중)
鳥嶼變碁布(조서변기포)
村家蓮蘂通(촌가련예통)
秧承宵雨嫩(앙승소우눈)
帆借夕陽紅(범차석양홍)
未了相酬句(미료상수구)
忽鳴上界鍾(홀명상계종)
천 길 위에서 바람을 타니 몸은 반공에 솟은 듯
섬들은 바둑판으로 펼쳤고 촌집은 연꽃 길로 통했네
밤비를 맞아 연해진 새싹 돛은 석양빛 빌려 붉었다
아직 주고 받을 시 못 마쳤는데 갑자기 산 위의 종이 울리네.
혜즙대사의 시이다.
범영봉에 올라(登泛瀛峰) 지은 시이다.
건물을 투시해 보는 그림을 조감도라 한다.
마치 새가 공중에 떠서 내려다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시는 자연의 조감도이다.
바람을 조절하여 천길 산정을 올랐다.
내 육신은 이미 새가 된 것이다.
비록 산마루의 한 점의 정상이지만, 허공에 솟은 기분이다.
내려다 보이는 저 끝없는 바다, 여기 저기 떠있는 섬들은 한 점 두 점 아무렇게나
놓인 바둑알이다.
조물주의 바둑내기인가.
다시 마을로 시선을 돌리면, 수로를 따라 이어지는 집들이 마치 연못에 떠있는 연꽃과 같다.
초가집이 연꽃으로 통했다 했다. 이미 온 마을이 불국정토로 변한 느낌이다.
파릇파릇 자라는 새싹은 간밤의 비를 받아 더욱 부드러이 자라고 있다.
이 경지를 ‘비를 받아 연하다(承雨연)’ 하였다.
한자로서의 시구는 그리 쉬운 수법이 아니다.
시인의 글자 고름의 높은 솜씨라 해야겠다.
저녁 햇빛에 반사되어 붉어진 돛을, 저 석양빛을 빌려서 붉다 하였다.
빛을 받은 것이 아니라 돛 자신이 능동적으로 빌려왔다.
시인의, 작시의 자신감이다.
산재된 자연을 그저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소재들을 찾아나서서 내게로
유인하는 적극적 자세이다.
시인은 이러한 경관 속에서 시상이 떠오르고 떠오른 시상은 한 편의 구성물로 짜내야 한다.
그것도 수작이라는 주고 받음의 대상이 있을 때에는 더욱 흥겹다.
그러나 시의 수작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저녁을 알리는 산사의 종소리가 들린다.
모든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순간이다.
대사에게는 수작이 끝날 날은 없다.
그 수작이 다름 아닌 자연 그 자체이기에.
이종찬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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