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화 김영한님이 음식점이던 대원각을 법정스님께 시주하여 스님께서 훌륭한 불도량으로
만드시어 오늘에 이른것에 대해서는 많은 불자들은 아시리라..
(길상화(吉祥華) 김영한님(1916~1999)은 일제치하, 민족사의 암흑기에 태어나 성장하다.
16살의 나이에 사라져가는 한국 전통음악과 가무의 전습을 위하여 조선권번을 세워 불우한
인재들에게 고전 궁중 아악과 가무 일체를 가르친 금하 하규일의 문하에서 진향이라는 이름을 받아
기생으로 입문하였다. 일찍이 그녀는 바위 사이 골짜기에 맑은 물이 흐르는 배밭골을 사들여
잠깐 청암장(靑岩莊) 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이곳은 뒤에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제3공화국 시절 국내 3대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이 되었다.길상화님은 노년에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스님을 친견한 뒤 생애의 높고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고,
당시 시가 1000억원이 넘은 대원각을 시주하겠으니 절로 만들어 주시기를 청하였다.
그 후 10년에 걸쳐 사양하시는 스님께 받아 주시기를 거듭 청하여 결국, 1995년 그 뜻을 이루게 된다.
1997년 12월 14일 대원각이 길상사가 되던날, 그 아름다운 법석에서 그녀는 법정스님으로부터
그저 염주 하나와‘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만을 받았고, 7천여 평 절터와 전각 모두를 보시하는
그녀의 바람은 단하나,이곳이 시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어 그들 모두가 고뇌의 마음을
쉴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었다.그날 그녀는 수천의 대중 앞에서 단 두어 마디 말을
했다고 한다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 입는
곳이었습니다.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간절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진실하게 울려 나오는 그녀의 음성에는 곡절 많은 그녀 인생의 슬픔을
넘어선 위대한비원이 담겨있었다.1999년 11월14일 그녀는 육신의 옷을 벗었다.
하루 전날 그녀는 목욕재계하고 절에 와서 참배하고 길상헌에서 생애 마지막 밤을 묵었으며,
다비 후 그녀의 유골은 49재 후 유언대로 첫눈이 도량을 순백으로 장엄하던 날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다.
길상사에서는 그 자리에 조그마한 돌로 소박한 공덕비를 만들어 세워그녀의 뜻을 기리고,
매년 음력10월7일에는기재를 모셔 그녀를 추모한다.또한 길상사를 근본도량으로 하는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는 ‘맑고 향기롭게 길상화 장학금’을 만들어 해마다 30명
안팎의 고교생을 선발,학비를 지원하며 그녀의 뜻을 잇고 있다.
속세에서 길상사로 들어서려면 '삼각산 길상사'라 쓰인 정문(일주문)을 들어서야 된다.
2000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수리했으며,정문을 들어서면 초록의 싱그러운
아름다움이 풍기는 길상사 내부가 펼쳐진다.
관음보살입상 맞은편에 자리한 샘터
절을 찾은 중생의 목마름을 해소해주는 고마운 샘터로 늘 물로 가득하다.
바가지에 물을 담아 한모금 들이키니 몸과 마음 속에 낀 떼와 번뇌가 말끔히 씻겨 내려간 듯,
속이 시원하다.샘터 위쪽에는 범종각(梵鍾閣)이 자리해 있다.
▲관음보살과 성모 마리아를 섞은 길상사 관음보살입상(觀音菩薩立像)
정문에서 설법전으로 가면 늘씬한 자태를 지닌 특이한 석상이 눈길을 단단히 잡아맨다. 바로 관음보살 누님이다.
그런데 그 흔한 관음보살처럼 생기지 않았다. 관음보살이 중생을 어루만지는 어진 누님이자 성모(聖母)와
같은 존재라 여인네처럼 아름답게 꾸며지는 경향이 있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곳 관음보살은 네모나게 다듬어진 커다란 돌을 대좌(臺座)로 삼고 그위에 소박하고 날씬한 모습으로
곧게 서 있는데, 천주교의 성모 마리아와 비슷한 이미지로 지어졌다.
이 관음보살은 천주교 신자이자 우리나라 조각계의 거장인 최종태씨가 만든 것으로 관음보살을 보살이
아닌 불모(佛母)로 삼아 만들면서 세상에 화제가 된 바가 있다. 2000년 4월에 봉안되었으며, 높이는 1.8m이다.
비록 불상의 면모는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불교와 천주교가 서로 돕고교류하여 어루어진 상징물로 그 가치는 크다.
머리에는 관음보살이 필수로 쓰는 보관(寶冠)을 썼지만 그 모습은 유럽 왕이 쓰던 왕관과 비슷하다.
머리결은 목 뒤쪽까지 내려왔으며, 얼굴은 자애로운 성모의 얼굴이다. 오른손을 들어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취했으며, 왼손에는 감로수가 든 정병(政柄)을 들고 있다. 손 아래쪽은 아무런 조각이 없다.
▲ 설법전 내부는 연병장처럼 무지 넓다.
▲ 극락전 금동아미타3존불
극락전 아미타3존불은 길상사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으로 1997년 11월에 조성되어 12월에 봉안되
었다. 길상사의 창건을 지켜본 불상으로 인자함이 깃들여진 표정으로 중생을 맞는다. 그의 오른
쪽에는 육환장(六環杖)이란 지팡이를 든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서 있으며, 왼쪽에는 보관을 쓴
관음보살이 나란히 자리한다. 두 협시불(夾侍佛) 역시 자애로운 표정은 아미타불 못지 않아 집
으로 보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피어난다. 3존불 뒤에는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금니(金泥)
후불탱화가 있다.
▲ 동쪽을 바라보며 자리한 지장전
경내 북서쪽에는 '나누는 기쁨'이란 이름의 찻집과 지장전이 자리해 있다. 설법전과 극락전이
기존의 요정을 개조한 집인데 반해 지장전은 새롭게 만든 건물로 2004년 10월 17일에 상량식(上
樑式)을 가져 2005년 5월 8일에 완성을 보았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우람한 맞배지붕 기와집
으로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층은 밥을 먹는 공양간인 선열당(禪悅堂), 2층은 도서관, 3층
은 지장전이다. 건물 앞에는 보름달을 닮은 동그란 연못이 놓여져 있고 주위로 푸른 잔디가 곱
게 입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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