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아름다움

화엄사 구층암

qhrwk 2022. 11. 13. 10:52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사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입니다.

화엄사 대웅전 바로 뒤에 천상에 이르는 입구가 있습니다.

 

◇ 구층암 바깥마당의 삼층석탑

 

 

 

이 암자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혹자는 화엄사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던 절로 화엄사의 모태가

된 절이라고도 하지만 신라 말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며 이름으로 보아 본래 구층석탑이

있었을 것으로 여길 뿐이다.

늦은 오후에 역사를 잃어버린 암자에 서서 폐사지의 그것처럼 가운데 마당에서 밀려난

깨어진 석탑을 보는 일은 마음 한구석 짠하다.

 

천불보전 앞 절의 중심 마당으로 들어오면 탑이 있어야할 자리 앞에 뎅그러니

석등 하나가 놓여있다.

오히려 석등 앞에 놓인 배례석에 조각된 연꽃이 더 화려하다 싶을 정도로 복련이 조각된 것

말고는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석등이다.

이래서 소박한 마음으로 암자를 찾는 사람도 조금은 같이 편해진다. 사람이든 그 무엇이든

제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부서진 몸돌과 옥개석으로 이루어진 불완전한 탑이지만

바깥마당의 석탑도 이곳으로 옮겨왔으면 싶다.

◇ 구층암 천불보전과 석등, 모과나무 두 그루
화엄사 각황전 건물
화엄사는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화엄 10찰 중 하나로 백제 성왕때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고지리산 자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찰입니다. 화엄사는 두가지로 유명한 사찰인데 하나는 원래는 장육전 이었지만 지금은 각황전이고또 하나는 인도의 스님인 연기조사의 효심을 나타내는 사사자석탑 입니다. 보통 사찰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배치가 되어있지만화엄사는 각황전을 중심으로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습니다.해인사가 장격각을 가장 위로 두고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 반면화엄사는 상당한 비대칭 가람배치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각황전은 원래 장육전으로 3층으로 되어있고 맨위에 3층은부처님의 신체 크기와 가장 유사하게 만든 불상을 모셨고그 사방 둘레를 청석으로 둘렀는데 그 청석에 화엄경을 사경했다고 합니다.정유재란때 8원 81암자가 모두 전소 되면서 일부 석경파편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돌에다가 화엄경 전체를 사경했습니다. 각황전 외부는 2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통층구조 건물입니다.내부사진은 못찍게 해서 못찍었습니다.주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좌우협시는 문수보현 보살입니다.화엄사찰의 주불이 비로자나 부처님인데 선교양종 사찰로선종지향적인 영향이라고 합니다. 화엄사 중창불사 이후 조선 숙종이 직접 각황전 편액을 내렸습니다. 각황전 바로앞의 왼쪽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이고 오른쪽은 원통전전사자탑입니다. 사선방향으로 찍어서 그렇게 보이지만 원통전전사자탑은 원통전의 부속탑입니다^
◇ 모과나무 기둥이 가운데 있는 구층암 좌측 요사의 단아한 모습
◇ 두개의 모과나무 기둥을 가진 우측 요사

 

잡석 토대, 덤벙주초, 대충 마감질한 떡판 같은 섬돌에 더하여 구층암 요사에 모과나무 다듬지 않고 그대로

세운 파격이 또 하나의 자연에 순응하는 미학적 볼거리와 생명불멸의 의미를 말없이 교훈으로 던져준다.

임란 때 모두 불타버린 요사를 새로 지을 때 암자 마당에 자라던 모과나무가 온 몸을 보시하여 요사의 기둥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마당 왼쪽에 자라던 한 그루의 모과나무는 왼편 요사의 가운데 기둥이 되었고,

마당 오른편에 자라던 두 그루의 모과나무는 같은 쪽 요사의 두 기둥이 된 것이다.

이는 비록 둘레가 160cm 정도에 수령 200여 년의 모과나무들이 몸뚱이 잘리어 기둥으로 섰지만,

그 세월이 살아서 200년 죽어서 100년 합해서 300년을 넘었다.

◇ 천불보전의 꽃문
◇ 천불보전에 해학적으로 조각된용두문두

 

절의 중심 건물로 대웅전의 역할을 하는 전각들은 대체로 극락정토로 나아가는 배인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형상화하기 때문에 용두(龍頭)조각이 있다. 이 천불보전도 마찬가지인데 ´토끼와 거북´의 조각 또한

반야용선과 같은 의미인‘반야귀선(般若龜船)´을 상징화한 것으로 불국토의 또 다른 상징이 되는

바다 속 용궁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를 가진 ´토끼와 거북´은 남원 선원사 칠성각,

상주 남장사 극락보전, 양산 통도사 명부전등에도 그림으로 남아있다.

이런 의미의 근원 즉,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혹은 ´별주부전´은 인도의 불전설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불전설화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본생담(本生談)으로 부처가 탄생하기 전의 불교설화를 말함인데

처음 설화에 등장하는 동물은 원숭이와 악어로 물에 사는 악어 아내가 원숭이의 간을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런 설화가 불교전파와 함께 중국에 들어와 한문으로 번역될 때 악어와 원숭이가 거북이와

원숭이, 또는 용과 원숭이로 변했고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주인공이 다시 토끼와 거북이로 변했다.

이와 관련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 ´삼국사기´열전(列傳) 김유신전에 삽입된 ‘귀토설화(龜兎說話)’이다.

 

◇ 천불보전에 조각된 ´토끼와 거북

 

귀토설화에는 토끼가 거북이 등에 올라타고 용궁을 향해 가는 장면이 있는데 이들이 가고자하는

목적지는 수궁(水宮) 즉, 용궁임을 알려 준다. 용궁은 용왕의 신령스러운 능력으로 만든 곳으로서

불교에서는 대해(大海) 밑에 있는 또 하나의 불국정토로 관념화되는 곳이기 하다.

따라서 이곳 천불보전에 있는 ´토끼와 거북´의 조각은 ‘반야귀선(般若龜船)´을 타고 불국토로 가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게다가 불교에서 토끼는 달의 또 다른 상징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를 향한 마음을 둥근 보름달에 비유한다.

보름달의 속성은 원이다. 원은 끊임없이 돌고 도는 연속성과 처음과 끝이 없는 영원성과 완전성 그리고

 원만(圓滿)의 상징이다. 따라서 토끼는 이런 속성들을 내포한 채 거북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다.

토끼가 달 속에서 방아를 찧는 모습에 대한 신비성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