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서사 축서사에 서면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소백산맥의 장관이 부석사 못지 않다.
축서사는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에 있다.
축서사. 높이 1206m의 문수산 중턱 800m의 산골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문수보살에서 이름을 딴 문수산은 오대산 상원사와 함께 4대 문수성지 중의 하나이다.
축서사에서 보는 산 능선들의 장쾌함이 부석사와 닮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이곳도 신라 문무왕 13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물야에 있던 지림사에 머물고 있는데,
산에서 한 줄 기 빛이 뿜어나와 올라가보니 비로자나석불이 있어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그때의 석불은 아니지만 지금도 보광전 안에는 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보탑성전의 층계를 오른다. 세월의 연륜이 덜한 전각의 생경함은 있지만 오르는 길은 흡사
부석사와 같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사리탑 뒤로 형형색색의
단풍이 대웅전과 함께 등장한다. 근래에 세운 탑이지만 조각이 섬세하다.
대웅전은 꽤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의 석축도 부석사의 석축과 닮아 있다.
새로 지은 전각이 다소 큰 느낌은 있지만 경내는 정갈하다.
축서사는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태백산맥의 줄기인 문수산(文殊山)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해발 1206m인 문수산은 한 때 많은 사찰들과 전설을 간직하고 있던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불적들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축서사란 이름은 독수리 축(鷲,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던 영축산을 본따 ‘축’으로 읽는데,
‘취’라고도 읽음), 깃들 서(棲), 즉 독수리 사는 절이라는 뜻으로
독수리는 지혜를 뜻하며 지혜는 바로 문수보살님을 뜻한다.
한편 험준한 뒷 산세가 풍수지리학상으로 독수리 형국이므로 축서사라 명명했다고 보는 이도 있다.
신라 문무왕 13년(서기 673년)에 의상 조사가 창건한 절로서 문수산 아래 지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의 스님이 어느 날 밤 앞산을 바라보니 휘황찬란한 빛이 발산되고 있어 광채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더니
한 동자가 아주 잘 조성된 불상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그 동자는 청량산 문수보살이라며
구름을 타고 사라져 버리고 불상만 남았다.
훗날 의상대사가 불상을 모실 곳을 찾아 현 대웅전 터에 법당을 짓고 불상을 모시니 축서사의 창건이다.
이 때 산 이름도 문수보살이 출현하였다 해서 문수산이라 했다.
3년 뒤에 의상대사께서 40여리 떨어진 봉황산 중턱에 대찰을 세웠으니 동국화엄제일도량인 부석사이다.
흔히 축서사를 부석사의 큰 집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웅전 상량문에 의하면 광서(光緖) 7년(서기 1875년)에만 해도 대웅전, 보광전, 약사전, 선승당,
동별당, 서별당, 청련당, 백화당, 범종각 등 여러 동의 건물이 있었고, 산내 암자도 상대, 도솔암,
천수암 등 세개나 되었다,
조선 말기 일군이 의병을 토벌하기 위해 방화하여 대웅전 1동만 남기고 전소시켰다.
그 후 한동안 폐사로 있다가 일제 말기에 삼성각과 6.25 직후에 요사 1동을 신축하여 사찰의 면모를
겨우 유지하다 최근에 무여스님께서 주석하시며 대대적인 불사가 이루어졌다.
15.5m의 亞자형으로 조성된 5층사리탑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사리탑에는 축서사에 전해져온 진신사리 2과와 미얀마에서 가져온 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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